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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뉴욕에 도착한 첫날, 소나기를 피해 어느 건물옆으로 숨었는데 그 맞은 편에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있었다. 저 건물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란 것을 뉴욕에서 몇일을 지나고서야 알았다. 그 전까진 맨하탄에서 제일 잘 보이는(?) 오래된 건물쯤으로 생각했었다.


    난 건축물이 주는 감동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건축물을 찾아내는 것이 또다른 기쁨이기도 하다. 건축물이 주는 감동은 그 흔한 시각예술에서 느끼는 것들과는 전혀 다르다. 현대미술, 현대사진이 크기가 점점 커지고 독자를 압도하려 해도 건축물의 크기에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내가 만질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크기, 바로 그 것이 건축물이 주는 감동 중의 하나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일상 혹은 생활'이라는 것이다.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누군가의 시선을 기다리는 그 것과는 달리 건축물은 사람을 벗어날 수 없다. 건축물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책이며 시간이 쌓인 역사책과도 같다. 그 어떠한 건축물도 사람과 사회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으며 사람이 없는, 사람이 배제된 건축물은 더이상 건축물이 아니다. 바로 그러한 사람이 있는, 사람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그 무엇보다도 사람의 일상과 생활에 제일 밀접한 것, 바로 그 것, 건축물이 주는 다른 감동의 하나다.

    내가 빌딩을 보며 감동을 느꼈던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바로 1년전 홍콩에서 HSBC본사 건물을 직접 보았을 때 나는 왜 그토록 그 건물이 수많은 건축관련 책에서 등장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철의 승리' - 빌딩이 내게 가르쳐준 새로운 결론이었다. 그 것은 현대, 바로 지금 이시간과 관련된 감동이었다. 새로운 형태와 새로운 소재, 그러한 HSBC건물은 나에게 현대의 승리를 느끼게 해주었었고 오늘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그보다 오래된 그리고 지금의 현대를 만들어 냈던 모더니즘에 관한 결론을 이끌어주었다.






    102층의 빌딩, 타이페이에서 101빌딩을 올라가보기도 했었지만 102층이라니... 느낌이 전혀달랐다. 또한 2년전에 지어진 건물과 달리 지은지 몇십년이 된, 완전 구식빌딩... 102층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면서 당혹스러웠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에 올라가서 뉴욕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실컷 찍고 내려오는 길에 내가 가볼 수 있는(관광객에게 개방된) 곳을 조금 둘러봤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소개를 듣고,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전망대를 올라가보고, 맨하탄을 걸으면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보면서 꽤나 많은 시간동안 생각하고 내렸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대한 결론은 '모더니즘, 기술에 대한 믿음과 승리'였다. 특히 실내를 돌아보면서 느꼈던 건 모더니즘의 확신이었다. 기술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유토피아로 이끌어줄 것이라 믿었던 모더니즘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난 모더니즘에 대해 깊게 공부하지 않았다. 그저 나에겐 수많은 XX주의의 하나였을 뿐이고... 그냥 그렇구나... 오히려 지금의 포스트모더니즘(이 것도 다 끝난 얘기지만...)을 이끌어 낸 것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맞이한 순간, 그 모더니즘의 정체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물론 무엇이 어떻다라고 정확히 얘기할 지식은 안된다. 다만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그 자체와 빌딩 안의 인테리어, 102층이라는 높이...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모더니즘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모더니즘이 무엇을 믿었는지, 무엇을 꿈꾸었는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뉴욕(정확히 맨하탄)을 거닐면서 혼자 중얼대었던 결론은 이 곳은 모더니즘, 그 자체라는 것이었다. 사실 난 뉴욕의 건물들이 좀 더 현대적이고 좀더 파괴적이며 더 자유분방할 것이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태평양을 건너 내가 맞딱뜨린 도시는 내 생각보다는 조금 더 오래된 도시였으며 그 도시는 모더니즘의 시작과 모더니즘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실제로 뉴욕에서 제일 맘에 들었던 건물은 크라이슬러빌딩이었다. 내가 갖고 있던 가이드북에서 크라이슬러빌딩의 로비는 꼭 가보라 써져 있었는데... 정말로 여기 로비는 한번쯤은 들어가서 봐야한다. 150년전의 아르누보 양식의 빌딩이 어땠는지 실제로 느껴볼 수 있는 찬스이기 때문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비슷하게 낡아빠진 건물, 그런데 난 정말로 이 건물이 너무 좋았다. 뉴욕에 도착하기 전에 뉴욕의 빌딩 중에 유일하게 알고 있던 건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내 눈으로 보고도 정말로 맘에 들었던 건물이기도 했다. 만약 나에게 맨하탄에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반드시 이 곳, 크라이슬러빌딩(능력이 된다면 말이겠지...)이나 아니면 크라이슬러 빌딩이 가까운 곳, 혹은 크라이슬러 빌딩의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크라이슬러 빌딩이 내게 익숙했던 이유는 매튜바니의 작업때문이다. cremaster라는 비디오아트 작품인데 미친듯이 집중해서 봤던 작품이었고 그 작품의 무대가 되는 크라이슬러 빌딩은 내 머릿속에서 어떠한 환상으로 자리잡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인천으로 돌아오기 전 나는 어디서도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양식을 접할 수 있었다. Beijing Exhibition Hall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난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단 하루만에 얼른 집에 가고픈 생각 뿐이었다. 정말로... 빨리 집에 가고 싶단 생각 뿐, 베이징을 벗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이랄까... 그러던 중에 베이징전시관을 마주쳤는데 서울로 빨리 가고싶단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가 지금껏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사회주의 양식의 건물, 내 입가엔 미소가 돌았다. 내가 베이징에 와서 무얼 보고 가는 것인지 확신이 들었던 순간이랄까...

    내가 들고 있던 베이징가이드북에 사회주의 양식의 건물 중 이 곳과 마오쩌둥기념관 등이 뛰어나다고 했는데... 어차피 건국절휴일이 끼어 있어서 마오쩌둥기념관이나 국립박물관에 가는 건 무리였고 이 곳만으로 충분했다. 천안문광장을 둘러 싼 건물들도 사회주의 양식이 아닌 건 아니지만... 솔직히 그 건물들은 너무 흔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베이징전시관의 이 건물은 60년대의 중국이 어떤 사회였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건국절을 맞이하여 베이징 시내를 가득 덮은 오성홍기를 보면서 그 상징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다가왔었다.

    베이징전시관의 날카로웠다. 얼음성과 같은 느낌의 뾰족함이랄까... 그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건물의 느낌이었고 내가 사는 세계와 다른 세계를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언젠가는 러시아도 가보게 될테지만 베이징전시관을 둘러보면서 더욱더 러시아를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Posted by 헝그리얼